정치

“가주는 왜 항상 민주당일까?”

   대선으로 본 정당선호 변화

vote-ca-lrg.fw <사진출처 sos.ca.gov>

미국 대통령선거를 치를 때마다 캘리포니아 주 공화당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표가 ‘사표’라고 말한다. 민주당의 절대적인 우위 때문에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던져봐야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는 왜 민주당의 철옹성일까?”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보는 질문으로 캘리포니아 주의 대선 역사를 알아보면 더 쉽게 알 수 있다.

 

1. 2차대전 전후

민주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시대였다. 1936년 대선 당시 캘리포니아 주 내 모든 카운티에서 루즈벨트 후보가 승리하며67%를 득표했다. 뉴딜이란 경제부흥 정책의 중심에 캘리포니아가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1940년 대선 역시 57.4%로 이겼는데, 이 대선에서 오렌지카운티가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며 2016년 대선 때까지 줄곧 공화당 아성으로 자리잡게 됐고, 일부 카운티가 공화당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1944년 대선도 루즈벨트 후보가 56.5%로 압승을 거둔데 이어 전쟁이 끝난 뒤 치러진 1948년 대선에서는 역시 민주당의 해리 트루먼 후보가 47.6%로 승리했다. 하지만 주 전역에서 공화당 우세 카운티들이 크게 증가한 것도 이때였다.

 

2. 2차 대전 이후

전쟁은 끝났지만 소비에트 연합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확산에 직면하면서 강력한 반공산주의 리더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인 시기였다.

1952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드와잇 아이젠하워 후보가 캘리포니아 주에서  56.3%로 압승을 했고, 민주당 우세 카운티는 소수에 불과했다. 이어 1956년 대선도 아이젠하워 후보가 55.4%로 이겼고, 1960년 선거에서는 오렌지카운티 요바린다 출신인 리처드 닉슨 후보가 50.1%로 승리했다.

그러나 1964년에는 민주당의 린든 존슨이 59.1%로 공화당 후보를 앞섰다.

 

3. 가주 출신 후보 전성시대

미국도 어찌 보면 동향 출신에 대한 보이지 않는 지지가 존재하는 듯 리처드 닉슨 후보는 가주에서 1968년 47.8%, 1972년 55%의 득표율로 민주 후보를 누르며 대통령에 올랐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1974년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뒤에 열린 1976년 대선에서도 공화당의 제럴드 포드 후보가 50%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하며 캘리포니아에서 민주당을 압도했다. 하지만 포드 후보는 미국 전체 투표에서는 민주당 지미 카터 후보에 패했다.

 

4. 레이건 혁명

포드 후보를 누르고 대권을 거머쥔 카터 대통령은 첫 임기부터 시련에 시달렸다. 오일쇼크, 경제침체로 허덕이는 와중에 이란 인질사태까지 발생하면서 리더십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영화배우 출신이자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던 레이건 후보는 낙관주의적인 모습과 자신감, 친화력을 내세워 1980년 대선에서 주 전역에서 완승을 거뒀고, 이어 1984년에도 압승을 이뤄내며 대통령 연임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어 열린 1988년 대선에서는 레이건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가 역시 과반을 차지하며 가주 선거인단 표를 가져갔다. 당연히 레이건 향수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5. 민주당 텃밭 다진 1990년대

1992년 대선에서 연임을 노리던 조지 부시 후보는 민주당 신예 빌 클린턴 후보에게 밀리며 캘리포니아 주의 표심이 민주당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불법체류자 이슈가 점차 불거지고 있었는데, 1994년 공화당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공화당 주 하원의원이 불체자에 대한 공공지원을 차단하는 주민발의안 187을 내놓은 것이다.

당시 캘리포니아 주는 라틴계와 아시안 인구가 급등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이 발의안은 표심을 민주당에 쏠리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말았다.

이후 열린 대선에서는 2020년을 포함해 7차례 모두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며 공화당 후보가 얼굴을 내밀 수 없는 민주당 성역이 됐다.